2019년 06월호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2014년부터 아동양육시설의 청소년들을 매달 만나 함께 사진 촬영을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봤으면 했거든요. 아이들이 촬영한 사진과 쓴 글들로 매년 사진집도 냈습니다. 자주 만나다 보니 그들이 겪는 현실, 어려움, 고민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디자이너였던 고대현 대표는 2017년 아동양육시설 청소년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디자인 기업 SOYF(Stand On Your Feet)를 시작했다. ‘너의 발로, 스스로 딛고 일어서라’는 의미를 담은 회사로, 디자인 중심의 직업 교육을 하고 일자리를 제공한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 스스로 생활을 책임져야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아이들이 많아요. 취업을 준비하려고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해도 소외되고 상처받기 쉽죠. 2016년 아동양육시설 여름 캠프에 갔다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학업도 잘 따라가지 못하자 선생님이 ‘너는 우리 학교에 도움이 안 되니 전학 가라’고 하셨다면서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엉엉 우는 거예요. 화가 나서 학교에 찾아가 따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요.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죠.” 그때 생각한 게 사회적 기업이다. 비영리 단체를 만들 수도 있지만,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영업 활동으로 스스로 자립 기반을 마련해가는 사회적 기업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동양육시설 아이들과 사진 촬영을 다니는 봉사 모임 ‘꿈꾸는 카메라’에서 함께 활동하던 회원 두 명과 2017년 5월 소이프를 세우고, 12월에는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을 받았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발되고, 현대차 정몽구재단의 사회적 기업 창업 오디션인 H-온드림에서도 입상해 지원받을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은 만 18세에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자립해야 하는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탐색할 기회도 없이 구한 일자리라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힘들고 재미없다면서 한두 달 만에 그만두기도 하죠. 그럴 경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지원금에 의존해 생활해야 합니다. 공동생활을 하다 갑자기 혼자 생활하면서 느끼는 외로움, 불안, 고립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노력하면 손 내밀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디자인 중심 직업 교육 소이프는 청소년들에게 디자인 중심 직업 교육을 하고, 이들과 함께 패션 소품과 디자인 문구도 만든다. 소이프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청소년을 해마다 열 명 안팎 선발해 디자인 중심 직업 교육을 한다. 아이들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 기본적인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우고, 상품 기획과 디자인, 제작, 촬영, 마케팅 등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전체 과정을 보고 배우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꿈꾼다. 그들의 꿈과 이야기를 담은 패션 소품과 디자인 문구를 만들기도 한다. 양말 세트에는 교육생들의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꿈을 담았다. “얼마 후면 시설을 떠나야 할 아이들에게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라고 물은 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어요.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면서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현실이 꿈을 가두지는 않으니까요.” 2층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곧바로 수영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집, 매일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할 수 있는 넓고 따뜻한 집, 반려동물이 많아서 외롭지 않은 집 등 아이들은 각기 다른 꿈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소이프는 그 그림으로 양말 세트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깊게 바라보고 탐구하면서 그린 자화상 캐릭터로는 감사-축하 카드, 맨투맨 티셔츠, 파우치와 필통,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안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교육생들이 그린 동물 캐릭터가 들어간 가방도 출시했다. “올해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잖아요. 교육생들에게 임시정부 관련 인물이나 사건을 조사해서 디자인으로 만들어보라고 했어요. 그 디자인을 살려 티셔츠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서툰 부분이 있지만 많이 바꾸지는 않으려고 해요. 자신의 작품이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니까요. 교육생들이 참여한 제품의 이익 중 일부는 그들에게 돌려주려고 해요. 자립 지원금으로 적립해줍니다.” 네이버 스토어팜, 카카오 메이커스서 판매 소이프에서 제작한 제품은 홈페이지나 네이버 스토어팜, 카카오 메이커스 등에서 판매되면서 관심을 모았고, 정기구독 방식의 후원자인 빌더(builder)에게도 전달된다. “우리는 후원자를 빌더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우면서 ‘사람을 세우는’ 역할을 하니까요. 현재 220명에 가까운 빌더들이 매월 1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회비를 내주는 덕에 아이들이 마음껏 교육받고 새로운 제품을 계속 내놓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잡지 구독처럼 매월 1만 원씩 받고 석 달에 한 번 새 제품을 전달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좀 더 많이 후원하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져 후원 회비의 폭을 넓혔습니다.” 소이프는 아동양육시설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디자인 아카데미뿐 아니라, 독립생활을 시작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허들링 커뮤니티’도 운영하고 있다. 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체온을 나누면서 남극의 혹한을 이겨내듯, 시설에서 나온 청소년들이 온기를 나누면서 거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가자는 의미다.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집을 구할 때 유의사항, 자취방 인테리어, 예금과 적금통장 만들기, 밑반찬 만들기 등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배우고, 명절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소이프는 수익을 늘리기 위해 디자인 제품의 단체 주문을 받는가 하면, BI(Brand Identity)와 CI(Corporate Identity), 전시 포스터, 리플릿, 편집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서비스도 하고 있다. 그는 “대표는 아프지도 지치지도 않아야 하고, 쉴 수도 없는 자리라는 사실을 요즘 실감한다”고 말한다. 매주 두 차례 밤 10~11시까지 아이들을 교육하고, 주말에도 여기저기 쫓아다니느라 주 7일 일하는 게 예사다. 2014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아이들이 집을 얻으면 찾아가서 여기저기 확인하고 손봐주기도 한다. 그는 왜 이렇게 고단한 삶을 자청하는 걸까? “저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꿈이 없었어요.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러 다니고 가출도 했죠.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너무 속상해하셨어요. 어머니는 ‘너는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면서 의상디자인 학원에 보내주셨고, 그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대학에 진학해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의류업체 머천다이저를 거쳐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동했죠. 아동보육시설 아이들을 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기회조차 없다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캄보디아 마을에서 찾은 다음 꿈 그는 소이프의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으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담은 카드와 꿈을 그린 양말을 출시하고, 여러 디자인 경진대회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졸업생을 신입 디자이너로 채용했다. 그에게 후배 교육도 맡길 생각이다. 궁극적으로는 이곳에서 교육받은 청소년이 소이프를 이끌어나가는 대표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계획이 있다. “봉사활동과 일 등으로 연이어 찾은 캄보디아의 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열악한 환경에 살면서도 12~13세만 되면 공장에 가서 일해야 하죠. 8㎞ 떨어진 학교에는 다닐 엄두조차 내지 못해요. 그들을 위해 마을 안에 학교를 지어주고 싶어요.” 원문 >>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L&tnu=201906100023